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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 T E R N I T Y




CAUTION SPOILERS !

아래 후기에는 소설 영원의 전반적인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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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ernity(+)


미련할 정도로 선우원을 사랑하는 이윤영과 그런 이윤영을 이해할 수 없을 만큼 증오하는 선우원은 선과 악의 경계가 뚜렷해 보이지만, 사실 윤영이는 완벽한 선이라고 하기엔 모호하고, 선우원은 악이라고만 하기엔 사랑이 존재합니다. 걷는 방향은 같으나 방식도 다르고, 둘에겐 결코 섞일 수 없는 경계가 명확합니다. 그렇기에 지겹게 지속되던 불행이 끝났다고 안도하는 순간, 되살아나는 것이고요.

저는 사람은 분명 변한다고 생각해요. 인생이 180도 뒤집히는 사건을 겪든, 겪지 않든 변할 수 있다고 믿어요. 다만, 사람마다 변할 수 있는 ‘정도’가 다르다고 봅니다. 한계랑은 다른, ‘이 정도’에 안주하게 되는 어떤 순간이 도래하며, 그것을 넘어서는 사람이 있고, 거기에 머물며 딱 그 정도만 변하는 사람이 있다고 말이죠. 윤영이와 선우원은 ‘정도’가 분명한 인물이에요. 선우원의 행동이 잘못됐다고 말할 수 있게 되지만, 매몰차게 돌아설 수 없는 윤영이와 윤영이에 대한 사랑을 자각하는 것과 별개로 폭발적으로 다정해지지 않는 것처럼요.

이어서, 챕터마다 내용을 한 단어로 압축할 수 있게끔 노력했어요. 갈망-투신-증발-파경, 2부는 악몽-발작-구원-환각-경계-첫눈, 3부는 갈증-해갈-불안 순으로요. 무엇보다 대비를 많이 강조했습니다. 물속에 들어가면 들리지 않는 것을 이용해 선우원은 고요를 탐미하는 사람으로, 윤영이는 격발하는 순간 생기는 파동을 이용해 소리를 생산하는 사람으로요. 파동은 물속에도 전해지기 때문에 선우원이 가진 고요를 깨뜨리는 윤영이는 어떤 의미에선 절대적이에요. 선우원이 윤영이에게 사랑이든, 사랑이 아니든 어떤 감정을 갖게 되는 건 정해진 수순이었어요. 그것이 사랑이 됐다는 것이 가장 아이러니하지만요.

다리 밑이라는 가장 낮은 곳에서 죽은 윤영이와 가장 높은 곳에서 투신한 선우원, 무슨 말이든 미련하게 참아서 왜곡을 불러일으킨 윤영이와 무슨 말이든 참지 않고 내뱉어 의도적으로 곡해한 선우원. 종국엔 윤영이의 무슨 말이든 듣고 싶어 매달리는 선우원도 마찬가지입니다. 선우원의 감정을 엘리베이터에 비유한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윤영이는 가장 낮은 곳에 있으니 끊임없이 내려가지 않으면 닿을 수 없어요. 윤영이가 선우원과 같은 곳에 서기 싫어하더라도요. 올라가는 버튼이 없다는 것은 선우원의 감정이 속수무책으로 사랑에 젖어 들었기에 쓴 표현입니다. 선우원에겐 윤영이 있는 곳이 비천한 땅의 끝이 아닌, 거꾸로 뒤집힌 천국이었다는 것도 윤영이에 대한 사랑이 너무도 커졌음을 암시합니다.

두 사람의 감정을 아름다운 언어로 표현하는 것에 많은 공을 들였습니다. 프리즘은 항상 일관되게 분노하는(투명함) 선우원이 사실은 굉장히 다채로운(무지개) 사람이라는 뜻이었어요. 투과되지 않던 새까만 선우원의 진심, 그리고 까만 우주. 그러니까 곧 선우원의 마음에 조난된 윤영도 다 이어지는 감정이에요. 검기만 했던 여름이 제 색을 찾아가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거듭 고민했던 본편의 마침표도 윤영이가 처음으로 선우원이 아닌 자신을 위해 한 결정이라는 것에 큰 의의를 두었습니다. 선우원을 위해서라면 완전히 사라졌을 거예요. 어쩌면 또 선우원을 위한다는 변명으로 죽었을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윤영이는 죽지 않았고, 무의식적으로 그를 찾아 호텔에 갔습니다. 그가 없으면 어떡하지, 하는 두려움도 함께였어요. 그러나 선우원은 그곳에 있었고, 둘은 안도합니다. 이곳에 윤영이 올 거라고 굳게 믿은 선우원도, 당연히 선우원이 있을 거라고 한 윤영도 서로를 인식하며 두려움을 걷어내요.

언제나 서로에게 존재한다는 것을, 두 사람은 죽을 듯한 고통과 끊임없는 의심으로 확인하지만 사실은 둘 다 알고 있습니다. 서로는 서로가 아니면 안 돼요. 나를 잡아먹지 못하는 희망을 가슴 속에 품고 있는데, 언젠가 잡아먹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하면서, 한편으론 나를 결국 이대로 내버려 둘 걸 아는 체념이 있습니다. 남들이 평균으로 정해둔 행복 같은 거, 주는 방법 따위 모른다는 그의 독백부터 윤영이에게 선우원보다 더한 불행이 없다는 것도 그렇고요. 단순히 시간의 흐름으로 해결될 차이는 아닙니다. 죽음조차 갈라놓을 수 없는 사랑이기에 끊어낼 수도 없고요. 쳇바퀴 돌 듯이 지속할 겁니다. 무한히 확장되는 개념과 달리 사라질 수 없는 불멸이자, 영원히 그 자리에 있는 거예요.

사람은 분명 변하지만, 우리의 생각처럼 빠르지 않아요. 인간은 늘 같은 실수를 반복하기에 그것이 또 인간답다고 여겨요. 그렇기에 영원을 모방한 둘의 사랑도, 매번 타오르는 갈증을 겪습니다. 선우원은 윤영이를 놓아줄 것처럼 굴지만, 결국 그의 욕심에 윤영이를 주저앉혀요. 윤영이도 모르지 않았을겁니다. 태양을 갈망하여 창공을 날아오르던 새는 사실 새이기 때문에 태양에 다가갈 수 없는 거라고요. 단순히 목을 축이는 해갈 또한 완벽한 해답은 아닙니다. 다만, 끊임없는 의심에서 조금 멀어질 수는 있을 거예요.

저는 두 사람이 죽는 순간까지 함께일 거라고 단언합니다만, 청혼은 이르지 않을 거라고 여겼어요. 그것이 불안에 나오는 선우원이고요. 10년이면, 선우원의 변화가 점진적으로 이루어지고 둘의 관계 또한 견고해질 시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쯤이면 매해 반지를 고르다가 결국 사지 못한 선우원도 가슴께에 넣어둔 반지 상자를 건네줄 수 있을 거라고요.

여담으로, 서른둘 이제 서른셋이 된 선우원은 흡연자입니다. 겉으로 담배 피우는 흉내만 내던 그는담배가 많이 늘었어요. 본인도 모르게 사랑을 배회하던 애송이가 이젠 진정한 사랑을 한다는 의미를 작게 담아 보았습니다.

그럼 마지막으로 축약해볼까요. 선우원과 윤영이는 어떻게든 해피엔딩을 맞이했다고, 그리하여 두 사람은 행복하다고, 무엇보다 죽어서도 천국에 갈 테니까.